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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메이드 SELFMADE] 남들처럼 살뻔했다 


흔히 세상에는 성공의 트랙위로 가게 되는 보편적 공식으로 보이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보편적 공식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보냅니다.

'저렇게 살아도 될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을텐데..'

오늘은 이런 보편적 공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성공적으로 하게 된 사람들의 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상황이 않좋다는 핑계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장애물일 뿐이다.

무슨 일을 하건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반대로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런 장애물들을 이유로 우리의 꿈을 쉽게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문승지는 특색있는 가구를 만드는 가구디자이너입니다.

원래 운동선수였던 그가 뒤늦게 가구를 디자인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행정신이었습니다.

자신의 가구가 해외에서 먹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개서를 번역해서 인테리어에 관련된 600명의 해외 기자 메일주소를 알아내서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세계의 언론들이 하나하나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무명이었던 그를 재조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글로벌 브랜드 COS에서 디스플레이를 위한 협업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온 COS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그의 커리어의 새로운 경험을 찍어줄 것이 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영어 실력은 또 한번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막상 COS에 가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면 그가 원하는 디스플레이를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직접 가 봤자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도면과 함께 제작/조립 설명서를 한권의 두꺼운 책으로 제작해 보냅니다.

그가 설명할 필요 없이 설명서만 보면 누구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서를 제작했습니다.

cos는 그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감탄했고 그는 결국 45개의 도잇의 cos 매장에 그의 작품을 전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꾸준함과 성실함은 성공의 초기 단계를 만들어 주는 가장 큰 열쇠이다.

꾸준함과 성실함,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들어서 교과서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는 단어 입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성공을 하려고 할 때,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나테라인터네셔널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매출 1조가 넘는 탄탄한 화장품 기업입니다.

이 거대한 미국 화장품 기업의 창업자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토종 한국인 송진국 입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송진국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을 처음 갔을 때 미국은 경제위기로 인원을 감축하고 해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진국은 한 화장품 회사를 찾아가 돈은 받지 않아도 좋은니 일단 일을 시켜보고 판단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화장품회사의 사장은 지밌다고 생각하고 송진국을 채용했습니다.

그는 다음날부터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늗게 퇴근했습니다.

그는 2주도 되지 않아 월급을 받기 시작했고 2년도 되지 않아 연구실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데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회사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회사 제품 영업을 할 때도 영어를 못한다고 창피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제품은 지심을 담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바이어들은 송진국과의 첫 미팅이 끝나면 그가 영어를 너무 못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두번재, 세번째 계속 찾아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결국 그의 제품을 샀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망신 당하고 창피하다고 물러설 거면 애초에 오지 말았어야 했고 사업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셋째,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진행한다.

빵집, '오월의 종'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한남동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빵집입니다. 

오픈 시간인 11시 전부터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줄을 서고 2-3시만 되면 대부분의 빵이 다 팔려 나갑니다.

오월의 종을 만든 정웅은 사실 서른 살이 넘을 때 까지 빵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무기재료공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시멘트회사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는 빵을 만드는 제빵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서른 세살의 나이에 사표를 내고 그는 제빵학원을 다니고, 

제빵자격등을 딴 후에는 유명 베이커리에 가서 화장실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베이커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었고 나이 어린 선배들에게 각종 하대를 받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고자 하는 꿈이 명확했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오월의 종이라는 빵집을 냈습니다.

오월의 종은 조금 이상한 빵집이었습니다.

천연발효를 시킨 밀가루를 사용해 시큼한 효소냄새가 나고 바게크 같이 딱따딱하고 먹기 심심한 종류의 빵만 만드는 빵집이 있습니다.

다른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탈톰하거나 입에서 놎는 빵은 전혀 없었습니다.

"디져트로 먹는 빵이 아닌 빵이 아닌 밥 대신 한끼를 대신할 수있는 식사같은 "빵을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 때문 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상한 빵집이라고 하고 빵집 주인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처음 열었던 빵집은 아예 망해 한번 재오픈 할 정도 였습니다.

한번 망하고 나면 노선을 바꿀 법도 한데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밀어 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빵의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빵이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명, 두명의 팬들이 조금식 축적되면서 일정 기간의 시간을 버티고 나니 디져트류의 빵이 아닌 식사대용의 빵을 찾는 5월의 종의 팬층이 두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운이 처음 망했을 때, 과연 다른 빵집처럼 남들이 좋아하는 것 이거니까 하면서 달콤한 빵만 만들었다면 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처음 내가 무슨일을 시작했을 때 분명넌 안될꺼야, 그런건 힘들꺼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기간 자신의 신념을 믿고 버틸수 있는 힘.

그것이야 말로 남들 과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는 큰 자산이 아닐까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나테라 인터네셔널의 송진국, 오월의 종의 정웅

이들이 하려던 일을 처음에 모두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승지는 세계 디자인 업계가 러브콜을 많이 보내는 인물이 되었고,

송진국은 매출 1조원 이상의 기업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정웅은 가게가 오픈하고 3-4시간이 지나면 팔리는 빵집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남들의 시건대로 살아왔다면 과연 지금의 그들이 존재했을까요?

남들과 다른 트랙을 걷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적용해 

성공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를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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