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체인지 그라운드] 도망치는 자에게 낙원이란 없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공부랑 시험이 끝날 거라는 생각하는데

진짜 시험은 학교가 끝난 다음 부터입니다. 

교과서가 없습니다. 더 이상 교과서는 없는데 시험은 매일 있는 것입니다.

회사는 무조건 새로운 걸 만들어야 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회사는 구제품이라는 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신제품만 만드는게 회사입니다.

없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새로운 걸 해야 됩니다.

그게 너무 힘든 겁니다. 


- 드라마 미생 중 - 

"잘 되고 있는 거야?"

"너 할 줄 알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은 학교 다닐 때 대우 받는 거고, 직장은 결과만 대접 받는데고"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거 할 줄 알아?

그 때 그걸 할 줄 아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거부감이 없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그런 애들이 성공하고 빨리 성장을 합니다.

그런 마인드 측면이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는 것과 좀 해 볼만 한데?

이건 엄청난 차이 입니다.

결국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태도는 어떻게 발전된다? 학습으로 오는 겁니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하나의 JOB을 갖고 있으면 최소한 그 일에 관련된 책 한권 쓴다.

그런 마인드로 학습을 하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서 책한권 만든다.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학습과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나옵니다.

그런데 딱 끝냈을때 그게 잘 통하면 은퇴 이후에 강연도 할 수 있는 겁니다.

한 권을 써보면 두권, 세권 쓰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한 권이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항상 일하는 것이고 항상 고민 하는 것입니다.

잘하면 커리어도 올라가고 나중에 책도 나오고 그러면 Game Over 입니다.


실제로 삼성의 사원들 20~30명 상대로 물어 봤습니다.

회사 생활 행복하냐? 90%가 불행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정을 불태우고 모든걸 다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회사였는데 왜 불행한 것일까요?

일이 힘들어서?  그럼 왜 일이 힘드나?

대부분은 잘 못해서 힘듭니다. 

그럼 왜 잘 못하는 가? 그건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보고서를 잘 쓰려면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이 독서 후 서평, 독서 후 요약 입니다. 

독서는 생각보다 많이 합니다. 그런데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쓰거나 요약을 하는 사람은 20%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막상 읽은 것 같아도 책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1년에 책 100권씨 읽습니다.

그런데 남는 것이 없습니다. 

글 쓰나요? 다 안씁니다. 쉬운 것만 하려는 겁니다. 

내가 빈약하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도 빈약해집니다. 

그런데 뭔가 많이 알고 있으면 많이 알수록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됩니다. 

무지를 깨닫게 되면 호기심은 늘어나게 됩니다.

지적 호기심이 생기게 됩니다.

익숙함과 지적호기심이 버무려지면서 예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하고 있게 됩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뭘 배운게 아니라 

배운걸 떠나서 배우는 법을 익힌것이 아니라 버틴 겁니다.

이것만 버티면 더 이상 공부 안해도 돼

엄청난 착각 입니다.

부모님이 뭘 하라고 해서 해요.

아무 생각 없이 자기가 하고 나서 원망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게 더 나쁜 겁니다. 

그런 것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한 개인으로서 의지를 갖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건데

모든 것이 남의 탓이라고 한다는 얘기는 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자신이어야 하는데 그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후회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번째 후회는 '해서 하는 후회'

두번째는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

해서하는 후회는 후회는 되지만 금방 후회가 사라집니다.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는 계속 내 머리 속에 맴돕니다.

망령이 되서 절대 떠나지를 않습니다.


도망치는 곳에는 낙원이란 없다.


그 어떤 것도 노력을 통해 바뀌고

성장한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될 학률이 높다.

반응형
반응형

[체인지 그라운드]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


혹시 지금 이 순간 친구나 동료가 옆에 있다면 한 가지 게임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나중에 해도 좋다.

다음에 열거된 노래를 입으로 하지 않고 박자를 따라 책상이나 탁자를 두드려보자.

그리고 친구에게 그 박자가 어떤 노래의 박자인지를 맞히게 해보는 것이다.

# 애국가 / 여러분 /  학교종 / 생일 축하합니다 / 강남 스타일

당신은 친구가 몇개를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탠퍼드대학교 엘리자베스 뉴턴은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그녀는 두 그룹으로 실험 참가자를 나누고 한 그룹은 노래의 리듬에 따라 탁자를 두드리고 다른 그룹은 그 리듬만을 듣고 노래 제목을 맞추도록 했다.

두드리는 노래는 약 120곡으로 미국인이라면 거의 다 아는 노래로 구성되었다.

실험 결과, 평균적으로 맞힌 곡의 수는 겨우 3곡에 불과했다.

3곡도 리듬을 들어서 제대로 유추했다기 보다 거의 찍어서 맞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다.

그런데 놀라운건 그 다음 질문에 있었다.

노래의 리듬을 두드렸던 사람에게 내가 당신에게 물어봤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몇개의 곡을 맞힐 거라 예상하는지 물어 보았더니,

노래를 두드렸던 그룹은 상대방이 무려 50퍼센트나 맞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현상이 외 발생하는지는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안다.

나도 20대때 친구들과 이 게임을 하면서 정말 신기했는데 박자를 두드리는 사람은 노래를 떠올리면서 해야해서 노래 멜로디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온다.

하지만 탁자 소리를 듣는 사람은 멜로디나 가사는 없고 그저 '딱딱' 소리만 들려서 노래가 아니라 모스부호와 같이 들리는 것이다.

이때 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이 '지식의 저주'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이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

지식의 저주는 타인에 관한 지식과 관련 있다.

상대방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상태이고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도 부족한 면이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 상대방이 아닌 내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잊을 때가 많다.

지식의 저주에 잘 빠지는 부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알면 자신이 무언가를 모르던 상태를 망각한다.

특히 교수나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모른다는 것을 망각한 상태에서 강의하면 학생들은 흥미를 잃게 된다.

강사는 당연히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으로 열변을 토하지만, 실제 청강자는 모르는 상태일 경우가 많다.

지식의 저주에 빠진 셈이다.

그래도 교사는 교육학을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적지만 대학교 교수는 매우 심각하다.

잘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일단 잘 알면 잘 가르친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메타인지' 부족과 '지식의 저주'가 만나는 경우를 나는 대학 강단에서 너무나 많이 느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내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가 이러려고 대학에 왔나. 자괴감이 든다' 라는 생각을 대학생활 하면서 무척이나 많이 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교육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저주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간에 빈번하게 발생한다.

반성컨대 나 또한 '지식의 저주'에 가끔 빠지지만, 한 사건을 겪은 뒤 부터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다음은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에 나온 '지식의 저주' 이다.

당신은 부디 '지식의 저주'에 빠지질 않기를 바란다.

10년 전에 친구와 야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참 떠드는데 이상하게 친구의 표정이 멍한 것이다.

나는 '녀석이 좀 피곤한가?'라고 생각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친구가 불쑥 물었다.

"도루가 뭐야?"

나는 순간 멍해졌다.

"아니, 진짜 몰라서 묻는거야?"

"응, 정말 몰라서 묻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자가 도루를 모를 수 있냐?"

친구는 얼굴을 붉히고는 기분이 많이 상한듯 집에 간다며 가버렸다.

친구의 빈자리를 보며 당황했지만 이내 좀더 깊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도루 같은 야구의 기본 용어가 너무나 상식적인 용어라고 생각해서 성인 남자가 모르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가 멍하게 있을대 조차 피곤해서지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친구는 정말 아는게 많았다.

특히 동식물에 대해서는 내 주변에서 가장 깊은 지식을 가진 친구였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그 친구에게는 너무 상식적인 것은 아닐까?'

나는 '지식의 저수'에 빠졌던 것이다.

평소 그 친구의 능력을 높이 평가 했음에도, 그 순간 '지식의 저주'에 빠져 친구를 무시했던 것을 깨닫고 매우 미안했다.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최대한 듣는 사람의 처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보내는 메세지가 때루는 그에게 '따딱' 소리만 나는 모스부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듣는 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합당한 멜로디로 불러주어야 한다.

비로소 그때 '지식의 저주'는 사라지고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변했다.

그 친구와 간혹 스포츠 이야기를 할 때면 조금 신경을 써서 용어를 풀이해 주거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

친구를 위해 멜로디를 불러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까?

그러고 우리는 여전히 베스트 프렌드다.

- 고영성, 완벽한 공부법 중에서 - 


이 내용에서 제일로 맘에 드는 문장은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라는 문구 이다.

물론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의 노력과 공부를 했다는 것이니 인정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일상 가장 많이 겪어 본 일일 것이다. 그리고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몰라도 아는척 하고 있는 자신을 본적이 많을 것이다.

그 무리에서 빠지고 싶지 않아서 무시 당하고 싶지 않아서 아는 척 가면을 쓰고 몰래 화장실 가서 검색하고 나오는 일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잘못된 이야기 문화중 모르는 부분에대한 것을 마치 잘못 한것 처럼 지적을 하고 무시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 이다.

댓글만 봐도 단어의 뜻, 마춤법 등등 별의 별 지적으로 시작해서 서로를 깎아 내려 간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모르는 것은 비난 받을 대상은 아닌 것이다. 

직장에서도 참많이 느끼고 당하는데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모른다고 면박을 주고 시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계급 놀이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너보다 위다 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건지 누가 그리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것은 내가 볼때 절대 좋은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안다고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몸통만 이야기 하면서 일을 지시하는 상사들에게 당해 본적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몸통만 봐도 이게 무슨 생선인지 알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모를 경우가 더 많다.

이제는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정말 걷지도 못했던 인간들이 자신이 걷지도 못했었다는 것을 잃어 버리고 사는 것 같다.


반응형

+ Recent posts